한국도자의 역사
한국 도자기의 역사 역시 토기부터 시작됩니다.
기원전 5000년경 신석기시대에 끈과 같은 장식을 표면에 붙인 돌대무늬突帯文토기가 출현에 이어 사선무늬를 새긴 빗살무늬 토기가 전국에 퍼졌습니다.
기원전 1000년경에는 야요이토기와 같은 아무런 무늬도 넣지않은 민무늬토기가, 기원전후에는 중국으로부터 물레와 가마기술이 전해져 기와와 같은 와질瓦質토기가 등장합니다.
이런 와질토기를 토대로 삼국시대의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에서는 도질陶質토기라 불리는 회흑색의 토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더욱이 이즈음에는 유약을 입혀 저온에서 굽는 녹유緑釉도기가 등장하여 통일신라시대에 큰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한국에 처음으로 청자와 백자가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 〔918-1392年〕10세기 경입니다.
청자는 중국의 절강성浙江북부에 퍼져있는 오대 월요越窯의 영향으로 탄생하였습니다만, 12세기에는 비취색의 깊은 푸른색을 띄는 아름다운 유색, 흰색과 검은색으로 발색하는 흙을 감입하여 장식한 상감기법 등, 고려청자 특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려청자의 2대 생산지로써 유명한 곳이 남서부에 위치한 강진과 부안입니다.
또한, 철 안료顔料로 문양을 그린 청자철화(산화철로 그린 그림)과 흑유(흑갈색의 유약)등이 사용된 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절정에 이른 청자도 14세기경의 정치불안 속에서 실용적인 대량생산에 걸맞은 회색을 띤 견고하게 구운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조선시대〔1392-1910〕가 되면 고려왕조말기의 고려청자에 백토로 다양한 장식을 입힌 분청<일본에서는 미시마三島로도 불림>이 새로이 등장합니다.
분청은 고려청자의 섬세한 문양과는 달리, 자유롭고 대담한 장식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거친 귀얄 붓의 흔적이 무늬처럼 남는 귀얄무늬, 백점토에 담근 덤벙, 특히 충정남도 공주군 반포면 계룡산 주변에서 구워져 계룡산이라 불리는 분청철화가 유명합니다.
이러한 분청의 일부는 일본에서 고려다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15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백자가 제작되어,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인 유교사상에 걸맞은 청렴과 간소를 기본으로 한 백자가 주역이 되었습니다.
백자는 왕의 그릇으로 경기도 광주일대의 관요에서 제작되었으나 16세기후반부터는 지방에서도 제작되었습니다.
한편, 백자에 코발트안료로 그린 청화青華는 15세기중반에 생산되어 예술적으로 청신清新한 조선왕조 특유의 것으로 전개되었으나 17세기에 들어 중국으로부터 코발트안료의 수입이 일시적으로 곤란해져 그대신 갈색으로 발색하는 철사안료로 무늬를 넣은 철화鉄畵가 유행하였습니다.
18세기전반에는 일본에서 아키쿠사데秋草手로 불리는 유백색의 옅은 흰색의 바탕에 무늬를 넣은 청화青華가 등장합니다.
1752년에 광주 분원리에 있는 관요가 정착되어 안정된 환경에서 청화는 물론, 철화, 적색으로 발색하는 동화銅畵등을 잘 표현한 작품 외에, 문인들의 취향에 맞춘 문방구와 주기酒器등도 제작되었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중간계층의 성장에 따라 장수와 다산을 기원하는 길상무늬와 민화적 요소를 포함한 현세이익적인 무늬가 등장하여 공예의 대표적인 표현양식의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