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인화 국화문 호
No.01375
조선시대 15세기
h:36.3cm d:33.6cm
5,560g
아타카테류야씨기증
Photograph KAZUYOSHI MIYOSHI
한국에서는 예부터 탯줄을 명산에 묻어 신생아의 행복을 기원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항아리를 태호胎壺라고 합나다. 아사카와 노리타카 浅川伯教에 의하면 본 작품은 제7대 세조의 손자인 월산군月山君・이정李婷(1454~1488)의 것으로 원래는 천순天順6(1462)년의 태지胎誌를 동반했다고 전하며, 분청사기의 편년자료로써 귀중한 작품입니다. 본래는 뚜껑이 있었으나 현재는 분실되고 없습니다. 낮은 입에서 힘차게 부풀어오른 어깨가 아랫부분을 향해 오므라지며 동체부분에는 인화문에 의한 섬세한 국화문이 가지런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전라남도 광주시 충효동 가마터에서 유사품이 출토되어 본 작품도 이 가마의 제품으로 보여집니다. 분청사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